앞에서 뛰는 사람 마흔일곱 살 박선영은 토요일 오후에 낡은 축구화를 들고 인천의 한 운동장으로 갔다. 운동장에는 파란 옷을 입은 여자 열두 명이 공을 차고 있었다. 모두 스무 살이 넘었지만, 선영보다 적어도 열다섯 살은 어려 보였다. 선영은 운동장 밖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가방을 의자 밑에 넣었다. 팀을 맡은 스물아홉 살 이지훈이 선영에게 다가왔다. “박선영 씨 맞으시죠? 물결 축구팀에 잘 오셨어요.” 선영은 운동장을 보며 물었다. “저는 어디에서 뛰면 돼요?” 지훈은 골 앞에 혼자 서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골키퍼가 편할 거예요. 많이 뛰지 않아도 되니까요.” 선영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골키퍼 안 해요. 앞에서 뛰려고 왔어요.” 공을 들고 있던 김민지가 두 사람의 말을 듣고 가까이 왔다. 민지는 스물일곱 살이고 팀에서 가장 빨랐다. “앞에서는 계속 뛰어야 해요. 생각보다 힘들어요.” 선영은 축구화 끈을 다시 꽉 묶었다. “알아요. 힘들면 제가 멈출게요.” 민지가 물었다. “축구를 오래 하셨어요?” 선영은 공을 한 번 발로 올렸다가 놓쳤다. “고등학교 때 했어요. 그 뒤로는 이십 년 넘게 못 했고요.” 민지는 굴러가는 공을 발로 막았다. “그럼 오늘 제가 얼마나 빠른지 먼저 보세요.” 지훈은 두 사람에게 운동장을 한 바퀴 돌라고 했다. 민지는 처음부터 앞으로 나갔고, 선영은 곧 숨이 차기 시작했다. 반 바퀴가 지나자 선영의 가슴이 빠르게 움직였고 입안이 말랐다. 그래도 선영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민지의 파란 등을 따라갔다. 마지막에는 두 사람 사이가 열 걸음 넘게 벌어졌다. 민지는 먼저 도착해서 물을 마셨다. “괜찮으세요?” 선영은 무릎에 두 손을 대고 한참 숨을 쉬었다. “안 괜찮아요. 그래도 한 바퀴 더 뛰어요.” 민지는 물병을 내려놓고 선영을 쳐다보았다. “정말요?” 선영은 몸을 바로 세웠다. “이번에는 공을 가지고 뛰어요.” 두 번째 바퀴에서 민지는 다시 빠르게 달렸지만, 선영은 민지와 같은 길로 가지 않았다. 선영은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을 기다렸다가 발을 내밀었다. 공은 민지의 발을 떠나 선영 쪽으로 굴러왔다. 선영은 공을 잡고 골 앞으로 보냈다. 지훈이 손을 치며 말했다. “좋아요. 그렇게 길을 먼저 보면 돼요.” 민지는 잠시 서 있다가 선영에게 말했다. “달리기는 제가 이겼어요.” 선영은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공은 제가 가져갔고요.” 일주일 뒤, 물결 팀은 바람 팀과 경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문제가 생겼다. 골키퍼를 하기로 한 사람이 회사 일 때문에 오지 못했다. 지훈은 선수들을 둘러보다가 선영 앞에서 멈췄다. “선영 씨, 오늘만 골키퍼를 해 주실 수 있어요?” 선영은 새로 산 축구화를 내려다보았다. “죄송하지만 싫어요. 저는 앞에서 뛰기로 했어요.” 민지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누가 골을 지켜요?” 선영은 대답하지 못했고, 다른 선수들도 서로 얼굴만 보았다. 지훈은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경기가 곧 시작돼요. 지금 정해야 해요.” 그때 민지가 골키퍼가 쓰는 장갑을 집었다. “제가 할게요. 선영 언니는 앞에 두세요.” 선영이 놀라서 물었다. “민지 씨가 왜 해요?” 민지는 장갑을 끼며 말했다. “언니가 골키퍼 안 한다고 했잖아요. 대신 오늘 골 하나 넣으세요.” 처음 삼십 분 동안 물결 팀은 한 골을 잃었다. 민지는 두 번이나 공을 막았지만, 앞에서 뛰지 못해 자꾸 골 밖을 바라보았다. 선영은 공을 받으려고 계속 움직였으나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쉬는 시간이 되자 선영은 바닥에 앉아 종아리를 눌렀다. 지훈이 선영 앞에 물을 놓았다. “이제 쉬는 게 좋겠어요. 다리에 힘이 없어요.” 선영은 물을 조금 마시고 물었다. “십 분만 더 뛰면 안 돼요?” 지훈은 선영의 떨리는 다리를 보았다. “다치면 다음 주에도 못 뛰어요.” 골 앞에 있던 민지가 크게 말했다. “언니, 오 분만 뛰어요. 오 분 안에 제가 공을 보낼게요.” 선영은 일어나면서 대답했다. “그러면 정확하게 보내요.” 경기가 다시 시작되자 민지는 공을 잡아서 운동장 오른쪽으로 길게 찼다. 선영은 공을 따라 달렸고, 바람 팀 선수 한 명이 옆에서 따라왔다. 선영의 숨은 목까지 올라왔지만 공은 아직 몇 걸음 앞에 있었다. 선영은 마지막 힘으로 발을 내밀어 공을 골 안으로 찼다. 골이 들어가자 팀 선수들이 선영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선영은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선영은 잔디 위에 누워 가슴을 누르고 숨을 쉬었다. 지훈이 달려와 물었다. “다친 곳은 없어요?” 선영은 손을 들어 보이고 천천히 앉았다. “숨만 좀 쉬면 돼요.” 민지는 먼 골 앞에서 장갑 낀 손을 두 번 흔들었다. 선영은 약속한 오 분 뒤에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경기 끝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선영이 따라가야 할 선수가 빠르게 앞으로 나갔다. 선영은 뛰려고 했지만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선수는 민지 앞에서 공을 낮게 찼고, 공은 민지의 손 밑으로 지나갔다. 경기는 두 골 대 한 골로 끝났다. 선영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축구화를 벗지 못했다. 민지는 흙이 묻은 장갑을 벗어 가방에 넣었다. 선영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오 분 뒤에 나왔어야 했어요.” 민지는 가방을 닫으며 대답했다. “저도 마지막 공을 막았어야 했어요.” 선영은 다시 말했다. “그래도 민지 씨가 앞에서 뛰었다면 우리가 이겼을지도 몰라요.” 민지는 공을 선영 쪽으로 굴렸다. “언니가 골을 안 넣었다면 한 골도 없었어요.” 다음 날 아침, 선영은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다가 세 번이나 멈췄다. 다리는 여전히 아팠고 경기 결과도 그대로였다. 선영은 일주일 동안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다리를 쉬었다. 그다음 토요일, 선영은 운동장에 다시 나타났다. 민지는 골키퍼 장갑을 의자 위에 놓고 혼자 공을 차고 있었다. 민지는 선영의 걸음을 보고 물었다. “오늘은 천천히 뛸 거죠?” 선영은 축구화 끈을 묶고 일어났다. “처음 한 바퀴만 천천히 뛸게요.” 민지는 공을 운동장 가운데로 보내며 말했다. “언니, 오늘도 앞이에요. 대신 열 바퀴부터 뛰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