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검은 띠
대전의 작은 태권도장 벽에 달력이 걸려 있었다. 오늘 날짜 아래에는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도윤은 도장 문을 닫을 생각이었다. 바닥에는 순자와 지훈이 마주 서 있었고, 민호는 신발장 앞에 앉아 있었다.
순자는 예순 살이었다. 석 달 전, 순자는 빨간 띠를 매고 이 도장에 왔다. 도윤이 문을 닫기 전에 받은 마지막 제자였다. 순자는 민호가 보는 앞에서 검은 띠를 따고 싶다고 했다. 품새 시험은 끝났고, 이제 지훈과의 겨루기만 남아 있었다.
“할머니, 물 여기 있어.” 민호가 물병을 들었다. 순자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물병을 돌려주었다. “잘 봐. 너무 가까이 오지는 말고.”
지훈은 보호대를 고쳐 맸다. “오늘은 봐드리지 않을게요.” “그래야지요.” 순자는 두 손을 올렸다.
“시작하기 전에 한 번만 해 보세요.” 도윤이 말했다. 순자는 앞발을 반 걸음 옆으로 옮기고 몸을 돌렸다. 이어 뒷발을 들어 앞쪽으로 찼다.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발부터 들지 마세요. 먼저 옆으로 가야 상대의 발을 피합니다.” 순자는 다시 발을 내려놓았다. “네, 다시 해 볼게요.”
겨루기가 시작되자 지훈이 먼저 찼다. 순자는 뒤로 물러났지만 발이 바닥 끝에 닿았다. “할머니!” 민호가 일어났다. “거기 앉아 있어.” 순자는 민호에게 말하고 다시 두 손을 올렸다.
지훈이 이번에는 천천히 다가왔다. 순자는 지훈의 발을 보고 있었다. 발이 올라오자 순자는 반 걸음 옆으로 갔다. 지훈의 발은 빈 곳을 지나갔다. 순자는 몸을 돌리고 뒷발로 지훈의 보호대를 가볍게 찼다.
“그만.” 도윤이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지훈이 자기 보호대를 내려다보았다. “이번엔 제가 늦었네요.” 순자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발을 먼저 들지 않았어요.”
도윤은 서랍에서 검은 띠를 꺼냈다. “순자 씨, 합격입니다.” 민호가 신발장 앞에서 뛰어왔다. 순자는 낡은 빨간 띠를 풀어 민호에게 건넸다. “이거 좀 잡아 줄래?” 민호가 두 손으로 빨간 띠를 잡는 동안, 순자는 검은 띠를 허리에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