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시계
수원의 엄마 집 부엌에서 지연과 나는 그릇을 나누고 있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로 부엌에 들어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나는 빈 상자 두 개에 수진과 지연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물건은 이름이 적힌 상자에 넣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연은 내 쪽 상자에 접시를 넣다가 멈췄다.
“그 접시는 네가 가져.” 내가 말했다. “나는 작은 냄비가 필요해.” 지연은 접시를 내려놓고 부엌 시계를 집었다. 흰 플라스틱 시계는 싸구려였고, 뒤쪽 뚜껑도 잘 닫히지 않았다. 나는 시계를 다시 벽에 걸었다. “시계는 나중에 정하자.” “왜 나중에 정해?” “아직 쓸 물건을 다 안 봤잖아.”
지연은 의자를 끌어와 시계 밑에 앉았다. “언니 집에도 시계 있잖아.” “네 집에도 있고.” 나는 접시 두 장을 종이로 감쌌다. 엄마 집에 오면 나는 늘 이 시계를 먼저 봤다. 엄마는 시간이 틀리면 손으로 시계를 두드리고는 했다. 지연도 그 모습을 봤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말하기 싫었다.
“반지는 어디 있어?” 지연이 물었다. 나는 접시를 싼 종이 끝을 접었다. “무슨 반지?” “서랍에 있던 금반지.” “내 가방에 있어. 잃어버릴까 봐 먼저 챙겼어.” 지연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그건 왜 먼저 챙겨도 되고, 시계는 나중에 정해야 해?” 나는 접시를 상자에 넣지 못했다.
“반지는 다시 꺼낼게.” 내가 말했다. “그럼 시계는?” “시계는 내가 갖고 싶어.” 지연은 의자에서 일어나 시계를 벽에서 내렸다. “나도 갖고 싶어.” 시계 뒤의 뚜껑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뚜껑을 주워 지연에게 건넸다. 지연은 시계와 뚜껑을 각각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반지를 꺼내 식탁 가운데 놓았다. 지연은 반지를 보지 않고 시계 뒤에 뚜껑을 눌러 끼웠다. 뚜껑은 한쪽이 다시 벌어졌다. “테이프 있어?” 지연이 물었다. 나는 서랍에서 테이프를 찾아 식탁 위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