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칸
경주의 작은 달문 서점에서 서윤은 처음으로 밤 문을 닫았다. 그녀는 새 주인이 된 지 사흘째였다. 낮에 정리한 책이 아침마다 다른 칸에 있어서, 서윤은 책장 앞에 노트를 펼쳤다. 밤이 되면 책들이 저절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그 제자리가 어디인지는 아직 몰랐다.
옆 가게 주인 정아가 문을 두드렸다. “아직 안 가셨어요?” 정아가 물었다. “책들이 움직이는 걸 보려고요. 무슨 책 찾으세요?” “단추 다는 책이요. 내일 쓸 앞치마가 찢어졌어요.” 서윤은 바느질 책이 있던 칸을 가리켰다. 그 칸에는 요리책이 빽빽했다. “낮에는 여기 있었는데요.” “책도 퇴근하면 자리를 바꾸네요.” 정아는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서윤이 문을 잠그자 책 한 권이 천천히 움직였다. 바느질 책이었다. 책은 제 칸 앞에서 멈추더니, 정아 쪽 책장으로 미끄러졌다. “저 책이에요.” 정아가 손을 뻗었다. “잠깐만요. 왜 저기로 가는지 보고 싶어요.” 서윤은 바느질 책을 다시 원래 칸에 놓았다. 책은 또 정아 쪽으로 갔다. 그 뒤를 요리책 두 권이 따라갔다. 서윤은 노트에 ‘사람이 있는 쪽’이라고 적었다. 정아가 옆으로 걸어갔다. 책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윤은 빈 칸에 손을 얹었다. 책장이 작게 흔들렸다. 아래를 보니 책장 다리 하나가 짧았다. “책들이 이 칸을 피하는 거였어요.” “종이 좀 있을까요?” 정아가 물었다. 서윤은 낡은 종이를 접어 다리 밑에 끼웠다. 책장을 밀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바느질 책이 돌아왔고 요리책도 그 옆에 섰다. 서윤은 노트의 글을 지우고 ‘튼튼한 칸부터’라고 적었다. “이제 책 가져가셔도 돼요.” 정아가 책을 집자, 서윤은 문 옆의 작은 등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