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의 흠집
부산의 작은 작업실에서 민호는 금고 앞에 앉았다. 서진은 금고 옆에 서 있었고, 태오는 문밖의 복도를 살폈다. 서진이 말했다. “죽은 남편의 금고예요. 번호를 몰라서 못 열어요.” 민호는 도구를 꺼내며 서진이 내민 돈을 보았다. 밀린 가게 월세를 내고도 남을 돈이었다. “안에 중요한 게 있나요?” “장부가 있어요. 오늘 꼭 필요해요.” 태오가 문을 조금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손잡이부터 봐야 합니다. 조금 기다리세요.”
민호는 손잡이를 돌리고 금속 소리를 들었다. 금고의 왼쪽 아래에 작은 흠집이 보였다. 처음에는 바퀴 자국인 줄 알았지만, 흠집 끝에 검은 점이 있었다. 민호의 손이 멈췄다. 사흘 전 창고에서 자물쇠를 고칠 때 민호가 낸 흠집이었다. 그때 손에서 미끄러진 도구가 금속을 찍었다. “이 금고, 창고에 있던 건데요.”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오가 문에서 돌아섰다. 민호가 다시 물었다. “창고에서 어떻게 가져왔어요?” 서진이 낮게 말했다. “태오 씨와 제가 가져왔어요. 남편 이야기는 거짓말이에요.”
민호는 도구를 상자에 넣었다. “그럼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태오가 문을 막았다. “벌써 열기 시작했잖아요.” 그때 금고 안쪽에서 짧은 소리가 났다. 서진이 금고 뒤의 선을 잡아당긴 채 민호를 보았다. 민호가 말했다. “그 선은 경보예요. 손대지 말았어야 했어요.” 태오는 문밖의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어떡해요?” 서진이 금고 위에 손을 얹었다. “장부에 제 이름이 있어요. 금고를 두고 가면 저만 잡혀요.” 민호는 다시 도구를 집었다. “태오 씨, 문을 잡고 계세요.” 금고가 열리자 안에 돈과 얇은 장부가 있었다. 서진이 돈에 손을 뻗었지만 민호는 장부를 먼저 꺼냈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나자 민호는 장부를 도구 상자 밑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