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백
신촌의 작은 대학 앞에서 서윤은 작은 복사 가게를 지켰다. 저녁 일곱 시, 민재가 젖은 우산을 들고 들어왔다. 서윤은 카운터 위의 논문을 손으로 눌렀다. 오늘만 세 번째로 뽑은 민재의 논문이었다.
“이번에는 다 고쳤어요?” 서윤이 물었다.
“거의요. 그런데 마지막 장을 다시 뽑아야 해요.”
“파일 주세요. 여덟 시에 가게 문을 닫아요.”
민재는 파일을 보낸 뒤 논문의 여백을 폈다. 거기에는 서윤이 연필로 쓴 메모가 남아 있었다. ‘이 말은 한 번 더 설명하면 좋겠어요.’ 그 아래에는 민재가 쓴 작은 답이 있었다. ‘이제 이해되나요?’
“이 답은 언제 쓰셨어요?” 서윤이 물었다.
“어제요. 서윤 씨가 볼 줄 알았어요.”
서윤은 종이를 내려놓고 인쇄기 쪽으로 걸어갔다. 기계에서는 아직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논문은 오늘 밤까지 내야 하잖아요.”
“지금 낼 거예요. 버스도 아홉 시예요.”
“그럼 시간이 없네요.”
“여덟 시부터 한 시간 있어요.”
서윤은 파일을 열었지만 인쇄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민재가 카운터 앞으로 와서 마지막 장을 가리켰다.
“여기에도 메모를 써 주실래요?”
“고칠 곳이 없는데요.”
“그럼 논문 말고요.”
서윤은 연필을 들고 마지막 장의 빈 여백을 보았다. 매번 긴 문장을 줄이라고 쓰던 자리였다.
“가게를 닫고 나면 밥 먹을까요?” 서윤이 썼다.
민재가 그 밑에 ‘네, 기다릴게요’라고 썼다. 서윤은 마지막 장을 인쇄하고, 가게 문에 붙일 종이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