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시 십 분 광주 솔빛동의 좁은 골목에는 느린시계 수리점이 있었다. 한서진은 아침 아홉 시에 문을 열고, 유리 안쪽의 시계들을 하나씩 살폈다. 수리를 기다리는 시계들은 모두 다른 시간을 가리켰다. 열한 시 이십 분, 오후 네 시 오 분, 새벽 한 시 사십사 분이었다. 주인이 가장 행복했던 날의 한 시각이었다. 오전 열 시쯤 박도윤이 작은 탁상시계를 들고 들어왔다. 시계는 낡은 수건에 싸여 있었다. “어제 떨어뜨렸어요. 초침이 아예 안 움직여요.” 서진이 수건을 풀고 시계를 작업대 위에 올렸다. 멈춰 있던 초침이 갑자기 움직였다. 초침은 한 바퀴를 돈 뒤 두 시 삼십육 분에서 다시 멈췄다. 도윤은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두 시 삼십육 분은 아닐 텐데요.” “수리점 안에서는 틀리는 일이 거의 없어요.” “행복했던 시간을 제가 모를 리가 있나요?” 서진은 대답하지 않고 시계의 뒷면을 열었다. 안쪽의 작은 태엽 하나가 휘어 있었다. 그녀는 태엽을 꺼내 작업대 위에 놓았다. “이 태엽은 바꿔야 해요. 내일 오후에 오세요.” “수리하면 지금 시간을 가리키나요?” “가게 안에서는 맞출 수 있어요. 하지만 문을 나서면 다시 두 시 삼십육 분으로 돌아갈 거예요.” 도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시계 옆의 흠집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 시각에 저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그건 손님이 찾아야 해요. 저는 태엽만 찾을 수 있어요.” 다음 날 도윤은 약속보다 일찍 왔다. 서진은 새 태엽을 넣고 뒷면의 나사를 조이고 있었다. 초침은 잘 움직였지만, 시계는 여전히 두 시 삼십육 분을 가리켰다. “생각났어요.” 도윤이 말했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어요.” 서진은 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 날이었어요. 저는 화가 나서 집을 나왔고요.” “그런데 왜 행복했을까요?” “두 시 삼십육 분에 아들이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왔어요. 우산도 없이요.” 도윤은 웃지 않았다. 그는 수리비를 내고 시계를 다시 수건에 쌌다. “요즘은 연락을 안 하세요?” 서진이 물었다. “서로 바쁜 척하고 있어요.” 그는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시계가 계속 이 시간을 가리키면 좀 불편하겠네요.” “대부분은 며칠 지나면 익숙해져요.” 도윤이 나간 뒤, 서진은 작업대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은색 손목시계 하나가 있었다. 그 시계는 삼 년 전부터 여섯 시 이십오 분에 멈춰 있었다. 그날 여섯 시 이십오 분에 서진은 동생 한미라와 크게 다퉜다. 두 사람은 함께 수리점을 열었지만, 미라는 일 년 만에 떠났다. 누가 더 많이 일했는지, 누가 먼저 약속을 어겼는지, 두 사람은 같은 말을 오래 반복했다. 마지막에 미라는 앞치마를 벗어 의자 위에 놓고 문을 세게 닫았다. 서진은 그 뒤로 손목시계를 고치지 않았다. 멈춘 시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자 골목의 가게들이 하나씩 불을 껐다. 서진은 출입문을 잠그고 작업대 앞에 다시 앉았다. 며칠 전 도착한 계약 갱신 서류가 한쪽에 놓여 있었다. 수리점은 아직 두 사람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고, 서류에는 미라의 서명도 필요했다. 서진은 손목시계를 꺼냈다. 그녀는 수리를 맡기는 손님처럼 시계를 낡은 수건에 싸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시계를 작업대 위에 올렸다. “손목시계 하나 맡기려고요.” 빈 가게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여섯 시 이십오 분에 멈춰 있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바늘은 뒤로 돌고, 짧은바늘은 앞으로 갔다. 두 바늘은 아홉 시 십 분에서 멈췄다. 서진은 한동안 그 시간을 바라보았다. 아홉 시 십 분은 수리점을 열기 전날 아침이었다. 미라는 머리에 흰 페인트를 묻힌 채 사다리 위에 서 있었다. 서진은 바닥에 앉아 간판의 글자를 고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침도 먹지 못했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누어 마셨다. 그날 아홉 시 십 분에 미라는 사다리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뎠다. 서진이 두 팔로 미라를 받았고, 둘은 페인트 통 옆에 함께 넘어졌다. 미라는 바닥에 누운 채 한참 웃었다. 서진도 손에 묻은 페인트로 미라의 코를 찍었다. 서진은 휴대전화를 꺼내 미라의 번호를 눌렀다. 긴 신호가 네 번 울린 뒤 미라가 받았다. “무슨 일이야?” “가게 계약 때문에 네 서명이 필요해.” “그 말 하려고 삼 년 만에 전화했어?” 서진은 아홉 시 십 분을 가리키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니. 커피도 한 잔 마시려고.”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내일 아침에 갈게.” 미라가 말했다. “하지만 가게로 돌아가는 건 아니야.” “알아.” 다음 날 아홉 시가 조금 지나 미라가 수리점에 들어왔다. 그녀는 서류에 먼저 서명한 뒤 작업대 위의 손목시계를 발견했다. “이거 아직도 가지고 있었네.” “어젯밤에 고쳤어.” 미라는 시계를 들어 아홉 시 십 분을 확인했다. “여섯 시 이십오 분이 아니고?” “아니더라.” 미라는 시계를 내려놓고 벽에 남은 작은 흰 페인트 자국을 바라보았다. “커피 있어?” “달게 마시지?” “두 숟갈.” 서진은 설탕을 두 숟갈 넣고, 미라 앞에 컵을 밀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