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봉투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전날 밤이었다. 낮에는 탐정 일을 하고 밤에는 택시를 몰았다. 그날 밤에는 비가 와서 앞 유리가 자꾸 흐려졌다. 나는 손으로 유리를 닦으며 빈 거리를 달렸다.
도윤은 길가에서 손을 들었다. 낮에 내 사무실에 왔던 손님이었다. 도윤은 아내 수진이 돈을 가지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나는 수진을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아직 시작하지도 못했다. 도윤은 젖은 옷을 털며 뒷자리에 탔다. “경찰서로 가 주세요.” “수진 씨 일 때문인가요?” “네. 기다려 봤는데 안 오네요.”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그는 창밖을 보다가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오늘 일한 돈이에요.” “아직 한 일이 없어요.” “그래도 받으세요.” 나는 봉투를 옆자리에 놓았다.
다음 신호에서 차가 섰다. 봉투는 아주 얇았다. “열어 봐도 됩니까?” “지금요?”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봐야죠.”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봉투 안에는 돈 대신 접은 종이가 있었다. 나는 종이를 펴서 읽었다. “저는 집에 있습니다. 도윤이 문을 밖에서 잠갔어요. 이 종이를 보는 분은 경찰을 불러 주세요. 수진.” 종이 끝에는 수진이 사는 집의 주소도 적혀 있었다.
“이게 뭡니까?” 내가 묻자 도윤이 앞자리로 몸을 기울였다. “그 봉투는 다시 주세요.” “수진 씨가 돈 봉투에 넣었군요.” “주소는 보지 마세요.” 나는 이미 주소를 읽었다. 경찰서보다 그 집이 가까웠다. 나는 핸들을 돌렸다. 도윤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지만, 차는 좁은 길로 들어갔다. “문 열쇠를 주세요.” 도윤은 손을 떼지 않았다. 나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경적을 길게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