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의 손님 주소가 없으면 배달은 누구에게 건너가야 할까? 이준호는 밤 열한 시가 넘은 서울의 골목에서 그 질문을 처음 생각했다. 십 분 전, 준호는 ‘달밤주방’이라는 작은 가게에서 검은 배달 봉투를 받았다. 가게 안에는 모자를 깊이 쓴 남자 한 명만 있었다. 벽시계는 열한 시 십이 분을 가리켰지만, 초침은 움직이지 않았다. “연우길 이십팔 번 맞죠?” 준호가 물었다. 남자는 주문표를 다시 보고 봉투 입구를 두 번 접었다. “네. 손님이 밖에서 기다린다고 했어요.” “전화번호가 없네요.” “앱으로 연락하시면 돼요. 그리고 봉투는 열지 마세요.” 준호는 봉투를 배달 가방에 넣었다. 음식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고, 봉투는 국수 한 그릇보다 무거웠다. 그는 남자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보았다. 이름표에는 박도윤이라고 적혀 있었다. 연우길은 오래된 가게와 낮은 집이 섞인 조용한 길이었다. 지도는 준호를 이십육 번과 삼십 번 사이로 안내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집도 문도 없었다. 회색 벽만 길게 서 있었고, 벽 위에는 주소를 떼어 낸 네모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벽 앞에는 회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손목시계를 본 뒤 준호의 오토바이 번호를 확인했다. “이준호 기사님이세요?” “네. 그런데 이십팔 번이 어디예요?” “여기예요.” 여자는 빈 벽을 가리켰다. 준호는 휴대전화 지도를 다시 열었다. “여기에는 주소가 없다고 나오는데요.” “알아요. 봉투를 벽 아래에 놓아 주세요.” “직접 받으시면 안 돼요?” 여자는 길 건너편을 보며 말했다. “열한 시 이십 분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삼 분 남았어요.” 길 건너에는 문을 닫은 시계 가게가 있었다. 유리창 안의 큰 시계들은 모두 다른 시간을 가리켰다. 그중 하나만 현재 시간과 같았고, 긴 초침이 가볍게 떨리며 움직였다. 준호는 봉투를 내려놓지 않았다.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골목 입구에 서 있었고, 불을 끈 채 엔진만 켜 두고 있었다. 여자도 그 차를 계속 보고 있었다. “주문하신 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준호가 물었다. “강서진이에요.” 준호는 앱을 확인했다. 주문자 이름은 강서진이 아니라 박도윤이었다. 가게 남자의 이름과 같았다. “앱에는 다른 이름이 있는데요.” 여자의 시선이 처음으로 봉투에 멈췄다. “그 봉투를 열지 마세요.” “가게에서도 똑같이 말했어요.” “그래서 열면 안 돼요.” 시계 가게의 초침이 열두 시 바로 앞에 가까워졌다. 그때 준호의 앱에 배달 완료 알림이 저절로 떴다. 그는 화면을 누르지 않았다. 골목 반대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달밤주방의 박도윤이 모자를 벗은 채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준호를 보자 잠시 멈췄다가 회색 벽 쪽으로 뛰었다. “봉투에서 떨어지세요!” 서진이 크게 말했다. 준호가 뒤로 물러나는 순간, 검은 승용차의 문이 열렸다. 오 형사와 다른 형사들이 뛰어나와 박도윤의 길을 막았다. 박도윤은 방향을 바꾸려 했지만, 서진이 그의 팔을 잡아 벽에 눌렀다. 회색 코트 안에서 경찰 신분증과 수갑이 드러났다. 오 형사가 검은 봉투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위에는 식은 국수 한 그릇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작은 휴대전화 여섯 대와 여러 사람의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같은 배달 앱과 서로 다른 기사들의 이름이 떠 있었다. 준호는 자신의 앱을 다시 보았다. 오늘 저녁 그가 거절했던 주문 두 건도 모두 연우길 이십팔 번으로 되어 있었다. 배달할 때마다 다른 가게 이름이었지만, 주문자는 모두 박도윤이었다. “저를 기다린 게 아니었군요.” 준호가 말했다. 서진은 박도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며 대답했다. “오늘은 준호 씨를 기다렸어요. 어제는 다른 기사님이었고요.” 박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주머니에서 여러 대의 휴대전화가 계속 울렸다. 화면마다 새로운 배달 기사의 위치가 회색 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오 형사가 무전기로 주문을 취소하라고 알렸다. 서진은 준호의 배달 가방을 살펴본 뒤 검은 봉투 대신 식은 국수 그릇만 돌려주었다. “이 주소는 원래부터 없었어요?” 준호가 물었다. “네. 그래서 누구도 문을 열고 나오지 않죠.” 시계 가게의 큰 시계가 열한 시 이십 분을 알렸다. 골목 입구에서 또 다른 배달 오토바이의 불빛이 나타났다. 준호는 도로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 두 팔을 들고 그 오토바이를 멈춰 세웠다.